주일 말씀
주일설교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성 경: 마태복음 24:36-44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19. 12. 01
36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36-44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저 높고 높은 곳에서 이 낮고 천한 곳으로 육신을 입으시고 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삶 깊고 어둔 골짜기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건져내시려 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빛과 소망을 주시며, 동행하시며,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고, 꽉 막힌 곳에서 건져내시어 높은 곳으로, 확 트인 넓고 넓은 곳으로 이끌어내시어 든든히 서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번 대강절에 주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크고 놀라우신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씀으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향하여 올라가고 계셨던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주님께서는 중요한 말씀들을 많이 남겨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은 예수님이 잡히시는 장면을 담고 있는 장이고, 바로 앞장 25장은 신랑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열 처녀의 비유, 칭찬받은 종과 책망받은 종의 달란트 비유와 함께 최후의 심판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4장입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무서운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키면서 이 성전 돌 하나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히 무너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일이 어느 때에 일어날 것인지를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그날을 피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인자가 여기 왔다 저기 왔다’ 말하더라도 믿지 말고 요동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날은 모든 이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어느 곳에 숨어 있든 주님의 천사는 찾아낼 것이라 했습니다. 주님의 천사는 선택된 사람을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독수리가 주검을 찾아내듯 어느 누구도 숨을 수 없습니다.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아들도 모른다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는 베드로후서에서 왜 예수님께서 이리 더디 오시는 것처럼 느껴지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더니 오시긴 뭐가 오시는 거냐? 안 오시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답변하신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특별히 좋아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벧후3:9)
그러나 분명히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 했습니다. 그날 하늘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원소들은 모두 불타 녹아 없어지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밝히 자신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벧후3:10)
예수님께서는 그날을 노아 홍수사건에 비유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마24:38) 홍수가 나서 그들이 다 멸망할 때까지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39) 예수님께서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39)
요즘 티비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 보시면 먹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에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짜장면을 스무 그릇을 먹고, 서른 그릇을 먹는 것이 정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연봉을 1억 받고, 2억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요. 그로인해 상하는 건강보다 돈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는 현재 분사형입니다. 계속 먹는 것에만, 맛집에만, 마시는 일에만,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온 정신이 팔려있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청년의 때는 시집가고 장가가는데, 장년의 때는 아이들 시집보내고 장가보내는데 온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도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혹시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고,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노아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그토록 아름다웠던 온 세상이 급격하게 타락했습니다. 인류에게 죄가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들어온 죄는 온통 타락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썩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경은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었으며 모든 사람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함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그들이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언제나 악할 뿐임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셨습니다.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쓸어버리겠다 결정하셨습니다.
죄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합니다. 매우 심각합니다. 죄를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작은 죄라도 그냥 두지 말고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죄 씻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죄를 씻어주시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속죄의 은총을 우리에게 그분의 자비하심으로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주님께 나오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죄는 남겨두지 말고 주님께 가지고 나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를 품에 남겨두지 마시고 가지고 주님께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내 죄가 너무 커서요’라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오라 우리가 변론해 보자 너희 죄가 그리 크냐 아무리 너희 죄가 진하고 그 정도가 심해도 눈과 같이 희게 될 것이며 양털같이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사1:18)
죄를 깨닫는 순간 바로 그때 주님께 나와 회개함으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죄를 남겨 놓으면 그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썩어가게 됩니다. 결국 무법천지가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엉망이 되고, 인생도 가정도 엉망이 되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무섭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열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입니다. 회개하고 죄 씻음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죄 있는 자를 향하여 내게로 오라 말씀합니다.
죄로 썩은 세상에서, 모든 것이 속속들이 썩어버린 세상에서도 노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의롭고 흠이 없으며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흠이 없다는’ 의미는 마음 깊은 곳 그 어느 곳에도 썩어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썩지 않았다는 것은 치유 받았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썩은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가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멸시와 질시를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마음은 상해있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상한 마음을 주님께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주님께 보여드렸고 그의 삶에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상함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치유 받았습니다. 상함이 다른 것까지 상하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한 마음을 열어 주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는 마음의 슬픔이 있을 때 주님 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내 심정을 통했다고 했습니다.(삼상1:15) 원통함과 격분됨을 주님께 쏟아 놓는 것입니다.(16)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근심의 빛은 사라지게 됩니다.(17-18)
감리교의 유명한 인도선교사인 스탠리 존스는 우리를 망가트리는 해로운 것들 열두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분노, 원망, 두려움, 걱정, 지배욕, 자기 집착, 죄책감, 성적 부도덕, 시기, 창조적 활동의 결여, 열등감, 사랑의 결핍’입니다. 그는 이것들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12사도라 했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기도 중에 이런 것들이 드러날 때마다 그리스도 앞에 이것들을 가지고 나아가 내어놓는 법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의 친구 ‘가가와 박사’와 함께 대화하던 가운데 ‘기도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는데 가가와는‘기도는 자신을 내어놓는 일이라고’ 했고 자신도 이를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기도 중에 이 열두 가지가 드러나면, 그 어떤 것이라도 떠오르면, 그것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용히 주님 앞에 내어놓고 ‘주님, 이것을 가져가십시오’ 주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상함을 주님께 보여드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노아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했습니다. 흠이 없으면 온전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그 일을 온전하게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오류가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걸림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강절에 아무 흠도 없게 되는, 여러분의 모든 흠, 상함, 상처, 썩어 문드러져 버린 모든 아픔들까지도 온전히 치유 받는 은총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못 고치실 질병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 방주에 들어가라. 방주에 먹을 것을 쌓아두어라. 노아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꼭 그대로 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 둘째 달(시브월) 17일에, 바로 그날에, 말씀하고 경고하셨던 대로 땅속의 깊은 샘이 터져버리고, 하늘의 홍수 문이 모두 열렸습니다. 사십일 동안 쏟아졌습니다. 하늘에서 땅에서 쏟아졌습니다. 노아는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그 방주 문을 닫으셨습니다.(창7:16) 150일 동안 온 홍수가 땅을 휩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속 깊은 샘의 문과 하늘의 홍수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던 비도 그쳤습니다. 땅에서 솟아나던 물도 멈췄습니다. 거의 한 해가 지났습니다.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루에 노아는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땅 위에 물이 모두 말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두 달이 더 지난 둘째 달 27일이 되어서야 ‘땅이 다 말랐으나 방주에서 나가라’ 하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까지 그는 방주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아마 물이 다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가라고 말씀하지 않나!’ 생각하면서 그 두 달이 일 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기다렸습니다. 모든 일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인내로 영혼을 얻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늘 깨어 있었습니다. 그는 기다릴 줄도 알았고 말씀이 떨어지면 즉시 순종할 줄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홍수가 일어나 그들을 모두 쓸어버릴 때까지도 깨닫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깨어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깨어 있어야 깨닫는 것입니다. 잠들어 있는 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대비하라 말씀할 때에 언제나 반드시 언급되는 말씀이지요. ‘깨어 있으라’ 입니다.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늘 깨어 있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홍수가 터지는 그 날까지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누가 그날 구원받을 자인지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날 그때가 되어야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날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하신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국에 가면 세 가지 일에 놀라게 됩니다.’ 무엇에 놀라게 되는가? 첫 번째, 내가 알던 목사님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내가 알던 교회 성도님이 천국에 없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두 번째는 가장 못나고, 죄인이라 생각했던 사람, 우리 동네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던 이가 천국에 있는 것 때문에 놀라게 된다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자신처럼 죄가 많은 사람이 천국에 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천국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밖에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임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으면 도둑이 들어도 뚫리지 않습니다. 도둑이 오는 시간을 미리 알고 있다면 모든 것을 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도둑이야’ 하고 외치면 됩니다. 주님이 오실 때 준비하고 있었다면 ‘어서 오십시오 주님’ 환영하면서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하고 있지 못했다면 허둥댈 것입니다. 가슴을 치고 후회할 것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생각지 못할 때 인자가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준비하고 있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방주를 지어라’ 노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는 준비하고 있으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정리한다면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받은 말씀입니다. ‘말일, 즉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의 전이 있는 그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다. 모든 산 위에 뛰어나리라’ 했습니다. 모든 다른 산은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많은 백성이 가면서 이르기를 “오라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율법은 시온에서부터 나오며, 여호와의 모든 말씀은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나올 것이다”(사 2:3) 했습니다.
깨어 준비하기 원하는 사람은 주님의 전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간다는 것은 각오가 필요하고 힘을 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드려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전’에 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전에서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로 행할 수 있는 마음도 주시고, 힘도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준비하려는 자는 성전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께서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곳이 성전이듯, 우리도 주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쫓아 성전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2019년 대강절 새벽기도회를 시작합니다. 새벽은 하나님이 도우신다 약속하신 시간입니다. 깨어나는 시간도 새벽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번 대강절 새벽기도회에도 하늘의 은총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새벽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새벽에 하나님의 전에 나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전에 나와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신 그분의 길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가지고 계신 계획을 깨닫는 것 자체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부르심을 깨달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르심을 깨닫는 시간은 대부분 성전에서 깊이 기도할 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말씀을 듣는 중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여기저기서 싸우고, 찌르고, 때리고, 부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성전에서 말씀을 듣는 중에 그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는 이제 싸움이 아니라 일할 도구가 필요합니다.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도구들을 만듭니다. 그는 이제 일꾼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주위와 싸우고, 가정에서 싸우고, 자신의 내면과 싸우다가 온 힘을 다 빼앗습니다. 싸우는 중에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다치고 다시 분노하고 칼을 갈고 창의 날을 세우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다 성전에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중에 그러한 삶의 모든 모습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젠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온 힘을 다해 일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을 도와줄 도구가 필요합니다.
밭에서 농사일을 하다 보면 그 작은 호미가 얼마나 그 일을 수월하게 도와주시는지를 바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러한 것들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도구를 분지하고 그 도구가 준비되면 일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빛 가운데서 행하자’ 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입니다. 본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도, 최후의 심판도 맡겨주신 일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이끌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의 인도하심 가운데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묻혀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를 엄중한 심판 앞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위에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아야 합니다. 먹이고, 입히고, 고통당할 때 찾아가고, 환대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인생입니다.
로마서 말씀에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졌으니 그러므로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빛의 갑옷은 일할 때 입는 옷입니다. 저녁에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면 새 아침 일하러 갈 때 준비된 작업복을 입는 것처럼, 때로는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입고 일하러 가는 것처럼, 단정하게 입으라 한 것입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거나,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아라.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아라. 예수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명한 성인 어거스틴이 젊은 날 방탕하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집어 들고 읽어라’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 보았을 때 바로 그의 눈에 들어왔던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부르심 받은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언제든지 일꾼의 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할 도구를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빛의 옷을 입고 깨어 주님과 함께 일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같은 밭에서 일하고 있더라도, 같은 맷돌을 돌리고 있다 하더라도 부름심 받아 주님의 빛의 갑옷을 입고 일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전혀 다릅니다. 마지막 때에 모든 것은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늘 깨어서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 때에는 방주였지만 지금 우리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갔던 노아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자신의 가족도 같이 그리로 들어갔던 것처럼 우리도 가족과 함께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방주 안에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었듯, 예수 안에는 우리가 먹고 새 힘을 얻을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령한 것, 하늘의 것을 예수 안에 두셨다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의 손과 발입니다. 주님의 성전에 나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 따라 그 말씀대로 행해야 하겠습니다. 비춰주시는 하늘의 빛으로 에너지를 삼고 우리 일의 힘을 삼아 성실하게 일해야 하겠습니다.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은 언제 주님 오실지 모르니 성실하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시간을 허비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깨어 있으라는 말은 언제나 ‘기도하라는 말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본문 다음 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가 그렇습니다. 준비한다는 것은 내면의 불, 기도의 불을 끄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신히 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하게 계속해서 불타오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불은 점검해 보세요. 꺼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의 불은 정기적인 기도의 시간이 없으면 사그라듭니다. 다시 불을 붙여야 합니다. 기름을 공급하고 바람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강원도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에 면에서 지원을 해주어 연탄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삼구 삼탄이라고 하는 연탄보일러도 거의 무료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당시 교회 사택은 1942년도에 지은 아주 오래 된 집이면서, 아주 큰 집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집이었는가 하면 6.25때 화촌면 면사무소로 사용되어질 정도로 아주 큰 집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집이 삼구 삼탄 연탄보일러를 태우면 온 집안이 뜨거워졌습니다. 보일러만 있다면 한 겨울의 추위도 넉넉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탄 갈 때를 놓쳐 불을 꺼트리기라도 하면 다시 불을 피우기까지 집안은 금새 추워집니다. 겨울 추위에 얼어붙은 연탄에 불을 붙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번 대강절을 보내며, 일꾼으로 부르심 받은 나의 내면의 불이 어떠한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연탄불 꺼지듯 꺼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합니다. 혹시 내면의 불이 사그라들고, 죽어가고 있다면, 대강절을 보내며 회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이 꺼져가는 내면에 다시금 불을 붙여야 합니다. 다시 기름을 붓고, 성령의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권능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그 불을 끄지 못하도록 힘을 내어 맡겨진 모든 일들을 감당하는 주님의 일꾼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꾼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마지막 세대인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 2020년 표어가 “기쁨으로 헌신하는 부르심 받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일꾼들이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20년을 계획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작전동교회 온 교우가 하나님께서 일꾼으로 불러주셨음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 번호 | 작성자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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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 주일 설교 '에덴 동산을 향하여' 이성용 목사 | 247 | 강대한 | 4 | |
20250803 주일 설교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복' 이성용 목사 | 246 | 강대한 | 10 | |
20250727 주일 설교 '온유한 복을 누리는 교회' 이성용 목사 | 245 | 강대한 | 13 | |
20250720 주일 설교 '애통, 그리고 위로' 이성용 목사 | 244 | 강대한 | 18 | |
20250713 주일 설교 '천국을 보는 사람' 이성용 목사 | 243 | 강대한 | 21 | |
20250706 주일 설교 'Doing or Being' 이성용 목사 | 242 | 강대한 | 24 | |
20250629 주일 설교 '모든 것을 가진 자' 이성용 목사 | 241 | 강대한 | 22 | |
20250622 주일 설교 '건강한 사회' 이성용 목사 | 240 | 강대한 | 32 | |
20250615 주일 설교 '은혜로 여기면' 이성용 목사 | 239 | 강대한 | 31 | |
20250608 주일 설교 '기도 신앙' 김의중 목사 | 238 | 강대한 | 36 | |
20250601 주일 설교 '진정한 자유' 이성용 목사 | 237 | 강대한 | 35 | |
20250525 주일 설교 '믿음을 잃었을 때' 이성용 목사 | 236 | 강대한 | 45 | |
20250518 주일 설교 '중생' 이성용 목사 | 235 | 강대한 | 46 | |
20250511 주일 설교 '부모의 말은' 이성용 목사 | 234 | 강대한 | 49 | |
20250504 주일 설교 '어린 아이를 주님께' 이성용 목사 | 233 | 강대한 | 51 | |
20250427 주일 설교 '긍휼을 배우라' 이성용 목사 | 232 | 강대한 | 61 | |
20250420 주일 설교 '보았으나' 이성용 목사 | 231 | 강대한 | 69 | |
20250413 주일 설교 '내게 주신 잔을' 이성용 목사 | 230 | 강대한 | 59 | |
20250406 주일 설교 '순례길에서 만난 복음' 이성용 목사 | 229 | 강대한 | 58 | |
20250330 주일 설교 '죽음을 넘어 사랑으로' 이성용 목사 | 228 | 강대한 |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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